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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Mics.

20130411. LG아트센터 콤파스 기획공연(1) 레프 도진의 <세 자매>

...19세기 말, 모스크바 인근의 한 지방 소도시에 사는 아름다운 세 자매와 그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꿈과 이상, 사랑과 배신, 그리고 좌절을 그린 체홉의 <세 자매>는 지금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공연장에서 많이 공연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도진은 이 작품을 “체홉의 작품 가운데 가장 복잡한(complex) 희곡”이라 설명한다. 즉, 인간 내면의 깊고도 다양한 얼굴을 표현한 체홉의 언어가 그 만큼 어려운 텍스트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도진은 체홉의 언어를 새로운 각도에서 비틀고 해석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낡은 고전이 아니라 현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LG아트센터 세 자매 공연소개 중에서> http://www.lgart.com/UIPage/perform/calender_view.aspx?seq=252011


올해의 다짐으로 문화생활 업그레이드하기를 결심, 아트센터의 연극 패키지를 예매했다.

무용이나 클래식은.. 왠지 잘거같아서... ㅠㅠ 그나마 스토리가 있어서 몰입도가 조금은 높을것 같은 연극을 선택.


첫 공연이 레프 도진의 <세 자매> 였다.


사실 뭐 스토리가 있어서 조금은 보기 쉬울거라고는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이런 '진지한' 연극을 봤던 적이.. 별로 없어서.. 좀 긴장됐다.

연극이 가진 포텐셜을 내가 다 받아들이고 알아들을 수 있을까?

졸면 어떡하지?


거기에, 갑자기 결정한 홍콩여행이 12일 출발이었는데 짐도 제대로 안싼 상태여서 부담감은 백배.


그래도 기왕 예매한 공연이니 열심히 보자며 아트센터로 갔다.






가기 전 친절한 LG아트센터에서 제공하는 관계도 공부하기.

러시아 연극이고, 러시아 배우들이 러시아말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막 보면서 내용 따라잡기도 벅찼다. 러시아 이름의 특성상 별칭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아서 도무지 누가 누군지. 으악. 


대충 줄거리는,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작은 도시에 사는 세 자매의 이야기.


여단장이었던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시절 그녀들의 주위는 언제나 장교들로 시끌시끌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주변의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그녀들은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던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예쁜 막내딸 이리나의 축명일(생일인가? 잘 모르겠음) 그녀는 희망과 기쁨에 차 있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갈 기대에 들떠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정직한 노동에서 찾을 수 있다며, 일을 할거라고 말한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투젠바흐 남작도 동화되어 노동의 가치를 계속 주장한다. 


큰언니 올가는 학교가 싫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한다. 학교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청혼을 해오는 남자만 있다면 당장 시집가겠다고 말하지만 아마도 청혼해오는 남자가 없는듯..(언니맴이 내맴 ㅠㅠ)


둘째 마샤는 엄청 똑똑한 남자인 줄 알고 쿨릐긴과 결혼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그건 자기의 오해.. 자신의 직장인 학교가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이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지겹기만 하다. 그러다 새로운 여단장으로 부임해온 베르쉬닌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세 자매의 오빠 안드레이는 총명한 학자로 교수가 될 희망에 부풀어 있고, 나타샤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 (근데 시누들이 나타샤를 안좋아함. 옷도 이상하게 입고 행동도 이상하다고 깜. 역시 누나가 셋 있는 남자랑 결혼하는건 힘든일인듯)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희망과 기대는 점점 꺼져간다. 모스크바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원치 않는 노동에 지쳐가며, 인생에서 재미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교수가 되고자 했던 안드레이는 시의 서기가 되어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갖고 유산은 도박을 탕진해버리고, 나타샤는 모두가 경멸하는 시의장 프로토포포프와 불륜관계에 애까지 낳았으며, 마샤와 베르쉬닌의 관계는 깊어가는데 마샤의 남편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건지 진짜로 모르는건지.. 이리나는 (사실은 정말로 원치 않았던) 노동에 지쳐간다.


모두들 자신의 삶에 불만만 더 커지고, 세 자매는 모스크바로 이사가면 모든게 더 좋아질거라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점점 인물들의 상황은 나빠져만 간다.


일하는건 힘들고, 그나마 사교의 대상이었던 여단은 떠나고, 이리나는 솔료늬이와 투젠바흐 남작 사이에서 갈등하다 투젠바흐 남작과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지만 솔료늬이와의 결투에서 남작은 죽어버린다. 베르쉬닌이 떠나고 마샤 역시 절망에 빠지고, 올가는.. 올가는 어땠더라? 교장 선생님이 되었나? 안드레이는 더이상 자신의 처지에 불만마저 갖지 않고 완전히 동화되어 버리고 나타샤가 프로토포포프와 낳은 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무대를 배회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리나는 남작이 없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 마샤와 올가는 그래도 삶은 끝난게 아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왜 고통받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연극내내 처음으로 세트의 2층으로 올라간 군의관의 팔이 툭 떨어져내리며 죽음을 암시한다. 무대 위에서 마치 죽음이 억누르는것처럼.


스토리가 있을거라고 기대했는데 뭔가 어렴풋이 이야기의 방향성은 있지만 특별한 사건이 없이 전개되는 연극이어서 집중하기는 좀 힘들었다. 생각외로 세트도 단순해서, 2층 저택의 앞면을 떼어낸것 같은 벽과 무대 맨 앞의 계단이 전부였고, 배우들은 관객들 사이를 통과하며 입퇴장을 반복했다. 꽤 가까운 거리에서 볼수 있어서 신기.


막이 바뀔때마다 저 저택의 벽은 무대 앞으로 이동하며 등장인물들의 동선에 점점 제약을 두었고 벽이 앞으로 움직일때마다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등장인물들의 기분도 그랬겠지.


삶은 절망의 연속이고 그 와중에도 웃음과 유머는 요소요소에 숨어있다는것을 연극 그 자체의 구성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레프 도진은 희망을 약속하는 대신 죽음을 보여주었다. 인생의 끝은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아이러니인걸까.


한 번 봐서는 잘 모를것 같다, <세 자매> 는. 레프 도진의 연출로 다시 볼 수 없다면 체홉의 원작이라도 읽어봐야 할까. 졸릴것같은데.